커피린

  커피 린에서는 상위 1% COE 커피를 씁니다. 0.1% COE(Cup of Excellence)는 일종의 커피 올림픽입니다. 커피 생산 국가별로 대회가 열리고 5차례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84점 이상을 획득한 커피를 그 해 최고 커피로 인정하고 ‘COE 커피' 라고 칭합니다.

 안면도로 가는 서해안의 작은 도시에 있는 《커피 볶는 집 커피린》의 메뉴판 한쪽에 적혀 있는 글이다.
그곳의 주인인 명인숙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집에서 쓰는 커피의 5~6 종류는 COE 커피를 쓴다. 식재료도 좋을 것을 써야 그것에서 나오는 맛이 좋듯이 커피 역시 좋은 생두에서 좋은 맛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두가 보통의 것보다 가격이 5~6배나 비싸지만 그녀는 점진적으로 메뉴판에 있는 커피들을 COE 커피로 바꾸려고 한다. 그리하여  메뉴에 있는 모든 커피를 COE 커피와 스페셜티로 바꾸는 것이 현재 그녀의 야무진 꿈이다.

 “좋은 생두를 찾았을 때 맥박수가 빨라지고 흥분이 되요.  그리고 그런 생두가 제 손에 들어왔을 때 그 느낌이란……. 절로 웃음이 나지요. 생두 통에서 농익은 과일 향이 나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온갖 향이 다 들어 있는 느낌이 들고……. 부케처럼 속이 꽉 찬 느낌이 들어요.”  

 자신의 커피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한 잔이라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하려는 명인숙 씨의 그 마음씨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커피를 만들고 있는지 알고도 남는다.
  “그런데……. 처음 이곳에서 핸드드립 전문점을 했을 때, 핸드드립 커피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COE 커피를 들여와 한잔에 9천원, 8천원에 가격을 책정했는데 한 잔도 안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고심한 끝에 지금은 6천5백원에 리필까지 드려요. 이제는 커피가 맛있는 커피인지, 맛없는건지 조차 구분을 못하시던 분들도 맛있는 커피맛이 어떤건지 알게 되신거죠. 그냥  맛있으면 그만입니다. 하하." 

지금의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은  스무 평이던 가게를 열 평 더 넓혔고, 5kg짜리 프로밧 로스터를 샀다. 조금이라도 더 여백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최상의 맛을 찾을 수 있는 커피를 볶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명인숙 씨가 그만큼 오래오래 커피장이로 살고 싶다는 뜻일 테다.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 가면 세 개의 로스터가 있다. 
  그 하나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명인숙 씨가 커피집을 내기 이전부터 즐거이 커피를 볶던 자작로스터다.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이 국내에서 최고로 결집이 된 커피 모임인 커피마루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구해 쓰다가, 지금은 취미교실을 여면서 수강생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큰 5kg 짜리 로스터를 보고 손님들은 묻는다.

  “저거 난로에요?”
  “네. 저거 너무 좋은 난로예요.”
  로스터를 잘 모르는 손님들이 무안해 하지 않도록 웃으며 응대를 한 뒤에 명인숙 씨는 기회를 봐서 그것의 용도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녀는 커피집을 하기 이전에는 말 수가 적었으나 커피집을 하고나서부터는 손님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느라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소박한 개인 작업실은 아치형의 이중문을 열고《커피 볶는 집 커피 린》의 실내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등과 카세트라디오, 로스팅 수첩과 노트가 얹혀 있다. 그 수첩과 노트에는 그녀가 로스팅을 잘 하기 위해 고심한 나날과 커피집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그 작업실의 왼쪽에 환경학을 전공한 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명인숙 씨가  고향으로 내려와 2009년 9월 18일에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의 문을 열면서 장만한 로스터가 있다. (주)태환자동화산업에서 생산한 1kg짜리 프로스타다. 그녀는 그 로스터를 ‘쿰’이라 부른다. ‘쿰’은 중남미에서 ‘함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녀가 쿰으로 로스팅을 할 때 첫 배치는 늘 핸드픽을 하면서 모아 둔 결점두를 볶아 손님들에게 방향제로 쓰라고 나누어 주었다. 

 그 녀석을 대신해서 요즘 명인숙 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녀석의 이름은 ‘리니’다. ‘린’의 어감을 살려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 녀석으로 로스팅을 할 때마다 그녀는 다정하게 말한다.
  “리니야, 잘 부탁해!” 
  그러다 얼른 출입문 쪽에 있는 ‘쿰’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쿰이 들으면 서운해 하겠지? 1년 동안 나랑 같이 했는데…….’ 
  편애를 안 하려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인숙 씨는 프로밧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리니, 너무 좋아요! 리니, 매력적이에요!”

 그러나 처음에 리니로 로스팅을 할 때는 실수도 많이 했다. 로스팅 수업을 받던 프로밧은 구형이었고, 그녀가 구입한 것은 신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그 로스터에 적응을 하느라 많은 원두를 버렸다. 그 원두는 방향제로 쓰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랬더니 요즘도 동네 사람들은 명인숙 씨에게 웃으며 말한다.
  “실수 안 해요? 제발 실수 좀 하세요!”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서는 원칙적으로 정해진 기간이 지난 원두는 갈아서 손님들에게 방향제로 쓰라고 선물한다. 


 “요즘 커피는 신맛이 강세이긴 하지만 여기서 커피린을 시작했을 때는 손님들이 구수한 맛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생두의 특성을 살리긴 하되 손님들이 좋아하는 맛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로스팅을 하는 편이였지만, 1년 넘게 커피취미수업을 하면서, 커피에서 신맛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신거죠. 그래서 지금은 생두의 특성을 100 퍼센트 살립니다.”
  명인숙 씨는 날씨가 좋든 궂든 아침에 출근을 하면 건너편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마당을 먼저 쓸고, 커피를 볶는다. 그렇게 볶은 커피로 핸드드립을 할 때 그녀는 1인분의 커피도 손님들 취향에 따라 다르게 내린다. 

커피를 연하게 달라고 주문을 하면 분쇄한 10g의 원두로 100cc를 내려서 희석을 하고, 커피를 진하게 달라고 주문을 하면 15g이나 20g의 분쇄한 원두로 150cc를 내려 희석을 하지 않는다. 커피를 추출하는 물의 온도는 약배전인 경우는 93도, 강배전인 경우는 88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볶음도에 따라 그 사이의 온도를 오가며 조절을 한다.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서는 새로운 커피 추출 도구가 출시되면 그것들로 커피를 내리는 시도를 한다. 손님들에게 커피의 다양한 맛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금속필터인 코아바 콘 필터로 내리는 재미에 빠져있다가 수업재료로 쓰고 있다.

그런 그녀가 내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한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도 그 바닷가의 도시를 향해 길을 떠났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떨어지며 만드는 물안개만이 그곳이 검은 아스팔트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그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태풍경보에 놀란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아걸어 어둡기 그지 없었다. 문이 닫힌 그녀의 커피집을 둘러본 뒤에 밤바다를 보려고 꽃지해수욕장으로 갔다. 파도가 계단식 논처럼 문양을 만들며 밀려왔다. 전설처럼 사랑을 이루려고 꽃지를 보러 왔던 그 숱한 발길처럼……. 그 속에 발자국 하나를 더했다.

파도소리에 몸을 뒤척이느라 잠을 설친 다음 날 나는 고대하던 커피를 마시러 갔다. 
  웃으며 나를 반긴 명인숙 씨는 내가 처음 본 케맥스라는 드리퍼로 예멘 모카 마타리를 내려주었다. 나에게는 가슴 아린 추억을 일깨우는 이름의 커피지만 그것을 모르는 그녀는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렸다.  

 “이 드리퍼는 독일의 화학자가 만들어 발명특허 받은 거예요. 먼저 뜨거운 물을 부어 종이필터 냄새를 빼요. 그러면 다른 것보다 두꺼운 필터도 드리퍼에 착 달라붙어요. 그 다음에 분쇄한 원두를 넣고 물을 필요한 양만큼 부어요. 그 다음에 나무스틱으로 저어줘요. 여과식과 침지식을 합친 방식이에요. 이 방식은  일본식과는 좀 달라요. 기존의 핸드드립 문화가 일본방식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요. 어떤 도구를 쓰든지 기본은 지키되 저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이 케멕스는 곡물이 포함된 필터로 추출하는 거라서 쓴맛과 잡맛등을 잡아줘서, 바보가 내려도 맛있습니다. 하하.” 
  그녀가 낮은목소리로 나의 귓가에 소근댄다. 

나는 바에 앉아서 그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알았다.
  서산 사람들이 누군가와 약속을 정할 때마다 
  “린에서 만나자!”
라고 말하는 이유를 말이다.

 서산 사람들이 이 카페를 오래된 친구의 집처럼 생각하거나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들은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만 있는 ‘잡맛이 없고, 부드러운 맛’을 지닌 커피를 만들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명인숙 씨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커피집을 찾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세세히 챙기는 명인숙 씨의 예쁘디예쁜 마음 씀씀이 또한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웃 같은, 이웃집 같은 커피집이고 싶었어요. 슬리퍼 신고도 올 수 있는 그런 집이요. 이웃을 표현할 한자가 뭐가 있을까 했더니 ‘린’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말을 넣어 상호를 정했어요.”

가까운 곳에 살든 먼 곳에 살든 명인숙 씨의 이웃이라고 느끼는 단골들은 부단히 음식을 싸다 나른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도 이웃에서 쟁반에 뭔가를 받쳐 들고 왔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부침개였다. 부추에다 오징어까지 다져 넣은.

 “손님들 때문에 굶지는 않아요. 어떤 날 어떤 분은 기숙사에서 어묵국 끓였다며 김이 펄펄 나는 상태로 들고 오시고, 어떤 날 어떤 분은 빵을 구웠다며 가져 오시고……. 구하기  힘든 음반, 책, 소품……. 커피린은 손님들이 만들어가고 채워주시는 것 같아요.”
  아침에 출근을 해서 커피머신 세팅을 맞추면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실 때, 맛있으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는 명인숙 씨는 손님 개개인을 잘 챙긴다. 그녀는 단골 손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손님들 얼굴만 보고도 그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오늘은 우울하신가 보구나! 뭘 챙겨드려야겠구나!’
  ‘단 것 드리면 기분이 좋아지시겠지?’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 단골들 안색을 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덤으로 내준다. 달콤한 케이크, 입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바삭바삭한 와플……. 그들을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도 가만히 곁들여서 낸다. 

 
그런 명인숙 씨의 정에 감복하여 《커피 볶는 집 커피 린》 옆에 있는 산 너머의 산사에서 비구니 스님들도 재를 넘어 원두를 사고 커피를 마시러 나들이를 한다. 그 스님들은 자신들이 쓴 털모자를 보고 “한 번 만져 봐도 돼요?” 라고 묻는 털털한 성격의 명인숙 씨를 아낀다. 또 다른 손님은 사이폰으로 커피를 내릴 때 커피가 안 내려져서 당황하는 그녀의 꾸밈없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명인숙 씨 혹은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은 어느새 그 누구에게든 담장을 허문 이웃이 된 것이다.


 “커피 맛은 당연한 것이고, 사람관계를 중시하자!”
  명인숙 씨가 커피집 문을 열면서 세웠던 원칙이다. 그 원칙에 충실하다보니 처음에는 까다롭게 굴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 단골이 되었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사람이든 진심으로 대하면 그 마음을 그 사람이 아는 거 같아요. 시간은 좀 걸려도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건 결국 사소하지만 따스한거죠?” 

 
‘커피는 나에게 즐거움이자 놀이’라고 말하는 명인숙 씨는 고수가 되는 것보다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때까지 단골들과 나이 들어가면서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님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요즘은 수반에 구피라는 물고기를 키우면서 손님들에게 분양해주는 재미에 빠져있다.

 또한 매달 출간되는 커피와 관련된 신간과 월간지를 보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 그녀는 커피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실비만 받고 커피교육을 하기도 한다. 정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커피를 잘 알아야 그 오묘한 맛을 더 풍부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에서 커피 값을 지불할 때 계산대의 컴퓨터 화면을 유심히 본 사람은 하하하 웃었으리라. 그곳의 바탕화면에는 ‘니카라구아…링거 한방 놔 주셔욧’하는 문구와 함께 커피에 중독된 한 사람이 커피가 주성분인 링거를 맞고 있는 그림이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출입문을 나설 때 명인숙 씨의 작업실을 곁눈질로 슬쩍 본 사람들 알리라. 명인숙 씨가 《커피 볶는 집 커피 린》을 열면서 소망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햇빛이 잘 드는 테라스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그녀가
  오랜 숙련함으로 커피 한 잔을 내온다.
                         커피 볶는 집
                              커피 隣
                                  Lyn

 이웃할 린, 여전할 린, 도울린 
                                    (끝)

글: 양선희(시인)
사진: 원종경(비디오그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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